뚝이네

2008년 8월 19일 화요일

오늘도 역시 노숙... 어디서 잘까 고민하며 보문단지 주변을 계속 배회하다가 푹신푹신하기도 하고 인적도 드문 잔디밭으로 결정했다. 자리에 누워서 에픽하이가 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효과음을 하나하나 더해가더니 음악이 완성되는 신기한 방송이었다. 근데 무슨 방송이었더라?;


잠을 청한 곳의 배경으로 보이는 이 타워는 2007년 준공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의 경주타워로 직육면체 박스 안에 황룡사 9층 석탑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82미터의 타워라고 한다. 음각하니까 안도다다오의 빛의 교회가 떠올랐는데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곳으로 방향을 정하고 공원 주위를 둘러봤다.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하고 사람도 참 없다. 

그래서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순번 대기표를 주는데 특이하게도 나무 주걱에 번호와 글을 써서 줬다. 기억에 남을만하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가 그곳을 기억하게 하는 연결선이 되기도 한다.

순두부찌개였나. 나는 주문을 했다.
"찌개 주세요."
식당 아주머니가 물었다.
"몇 분이세요?"
"한명이요."
"한 분이요?"
'네, 한명이요."
그러자 주변의 시선들이 나에게 쏠렸다. 뒤돌아서 보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주변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대가족, 어린 자식들과 나들이온 젊은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온 사람이 거의 다 였다. 이젠 익숙해 질 때도 됐는데, 아니. 난 익숙한데 왜 시선이 쏠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신경 쓸건 없다. 다른 손님이 내게 해꼬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심리가 있나보다.
생각해보니 내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으니 그것 때문에 시선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경주에 왔으니 유적지를 둘러보는게 맞다고 판단해서 관광지도를 펼쳐보며 이곳저곳을 누볐다. 이곳은 아마 초등학교 다닐 적에 단골로 왔었던 김유신 장군묘. 반 친구들과 함께 어딘지도 모르고 떠들고 노는데만 바뻤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낮인데도 이렇게 그늘이 많고 시내 같지 않게 나무가 우거지다. 그리고 동네분들과 담소를 나누며 산책을 하는 아주머니들도 많이 보였다.


무열왕릉에도 가보고.

왕릉 앞에 세워져 있던 네발 자전거.

경주 국립 박물관에 들어가서 전시품을 구경하던 중, 재밌는 것을 봤다. 목제주령구(木製酒令具)라고도 하는 이 나무놀이구는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 되었고 흡사 주사위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고 14면체의 나무기구이다. 이는 술을 마실때 벌칙에 사용되는 주사위 같은 놀이도구로 각 면에는 벌칙이 쓰여있다. 옛날에도 술을 마시며 흥을 돋구기 위해와 같은 놀이를 했다하니 현재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위해 혹은 흥을 돋구기 위해 벌주, 벌칙 등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른 건 없다고 본다.
각 면에 써있는 벌칙은 다음과 같다.

※ 사각형인 여섯 면의 벌칙
1. 금성작무 禁聲作舞 소리없이 춤추기
2. 중인타비 衆人打鼻 여러사람 코 두드리기
3. 음진대소 飮盡大笑 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4. 삼잔일거 三盞一去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5. 유범공과 有犯空過 덤벼 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6.자창자음 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 육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7.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뚝을 구부려 다 마시기
8.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 간질러도 꼼짝 않기
9. 임의청가 任意請歌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10. 월경일곡 月鏡一曲 월경 한 곡조 부르기
11. 공영시과 空詠詩過 시 한수 읊기
12. 양잔즉방 兩盞則放 술 두 잔이면 쏟아버리기
13. 추물막방 醜物莫放 더러운 물건을 버리지 않기
14. 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

아쉽게도 이 것은 복제품인데 진품은 발굴 후 습기제거 중에 연소되어 재가 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그 당시에 사각형면이 6개면, 육각형면(삼각형면) 8개면으로 14면체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없어져 버렸다니 아쉽기만하다.

반짝거리는 장신구에 홀려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어릴적 너무너무너무 많이 와봤던 첨성대.

경주에는 정말 유적이 많은가보다. 아직도 발굴하는 곳이 있다. 한 군데가 아니다 이곳 말고도 돌아다니는 내내 이런 현장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얼마나 유적이 많기에 이 정도일까. 과연 역사의 도시답다.

대게, 아니 홍게라도 먹고 싶었지만 나에겐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그냥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돈의 여유. 


짭짤상큼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산한 해안도로를 달렸다. 그래서 사진이 별로 없다.

단체로 오토바이 여행을 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는데 아마 친구들끼리 마실 나온거겠지? '아, 친구들과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며 부러워 했다.

방파제와 테트라포트가 밀집해 있어서 인지 등대가 3개나 몰려 있었다. 특히 저 흰색 등대는 분위기 있어 보였다.

길을 가다보니 이런 오르막 길이 나왔다. 저 경사를 보아하니. 풀 스로틀로 해도 내 스쿠터로는 시속 10km도 안나올게 뻔하다. 오르기 전부터 다음이 상상된다. 그래도 이런 오르막 길은 좋다. 걷는 속도랑 비슷하게 올라가지만 내려올때의 쾌감은!! 내 스쿠터도 시속 80km가 나올 수 있다!!

그렇게 신나게 해안도로를 질주했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려 한다. 끊임없는 해안선을 따라가다 방파제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그리고 울진군에 들어서자마자 할인마트로 달려갔다. 목살과 번개탄 2개를 샀다.

돌을 아래 깔고 번개탄의 위, 아래에 공기가 통할 공간을 만들어 준 후 더 큰 돌을 양 옆에 세우고 오는 길에 득템했던 대리석을 얹었다. 너무너무 맛있게 구워졌다. 옆의 바위에 걸터 앉아 고기를 먹었다. 간도 안했는데 너무 너무 맛있었다. 한 근은 산거 같은데 너무 배고팠던 터라 다 먹어버렸다. 밥을 안 먹었던터라 좀 부족한 감도 있었다.

고기를 다 해치운 후 포만감과 함께 몰려오는 스스로의 창피함(외진곳이라 인적이 없긴 했지만)과 민망함. 하지만 잘 먹었다. 친구랑 왔으면 소주라도 먹으면서 한 판 벌렸을텐데.

그렇게 오늘 하루도 지나갔다. 
 
이동경로              경주 → 울진
이동거리              200 km
  주  유                3.38 L → 6000 원
 총 비용               2844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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